美 장애인 인권 법학자 캔터 교수가 장총련 간담회에서 던진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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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햇빛촌 조회 48회 작성일 26-05-20 15:24본문
기자명칼럼니스트 서인환 입력 2026.05.20 09:08 수정 2026.05.20 09:09
CRPD 전문가 초청 포럼을 앞두고 간담회를 하고 있는 모습(우측 끝의 여성이 캔터 교수). ©서인환
【에이블뉴스 서인환 칼럼니스트】한국장애인연맹(한국DPI)이 창립 40주년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 채택 20주년을 기념해 국제 전문가 초청 포럼을 개최했다. 지난 18일 오후 1시 반부터 시작해 19일까지 양일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포럼을 진행하고, 20일은 서울대학교로 이동해 포럼을 진행하는 것으로 준비했다.
한국장애인연맹은 40년 전인 1986년 이익섭 교수를 중심으로 결성되었고, DPI의 국제 활동 참여와 장애 관련 국내 연구모임 운영과 장애인 인권운동을 전개하여 오다가 2002년에 사단법인으로 인가를 받았다. 운동단체로서 법인이 도움이 되는지 구속이 되는지 고민을 해 오다가 장총련과 함께 하기 위해 법인 인가 신청을 결심했다.
CRPD는 2006년(12월 13일)에 유엔에서 법안을 마련하고 세계 각국의 정부가 참여하여 채택을 서명하였다. 그 자리에 장애인 당사자 대표들도 있었는데 한국의 당사자 대표인 이익섭 교수는 복지부장관이 모두 서명을 했다는 말을 듣고 그렇게 알고 있다가 나중에 선택의정서는 서명을 하지 않은 것을 알고 분개하였다.
국내 비준은 2008년에 국회를 통과하였고(12월 2일), 시행은 2009년부터(1월 10일)이다. 그리고 개인 진정과 조사절차를 담고 있는 선택의정서는 2022년(12월 15일)에 와서 이루어졌고, 발효는 2023년 1월 14일이다.
유엔은 1948년 보편적 인권선언을 통하여 모든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선언한 바 있다. 1971년에 정신장애인 권리선언이 있었고, 1975년에 장애인 권리선언을 통하여 장애인의 시민권, 교육, 직업, 사회참여의 권리를 천명한 바 있다. 1981년 국제장애인의 해를 선언하였고, 완전한 참여와 평등을 각국이 실천할 것을 촉구하였다. 장애를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1
982년에 장애인에 관한 세계행동계획을 수립하고, 예방과 재활, 기회균등을 정책에 반영하도록 하였다. 1983년부터 1992년까지 유엔장애인 10년을 선언하여 접근성, 교육, 고용에 대한 논의가 확대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993년 장애인 기회균등에 관한 표준규칙을 제정하였는데, 접근성, 교육, 고용, 자립생활, 사회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규칙들을 마련하였다.
유엔총회에서 장애인 인권을 최초로 주장한 대통령은 루즈벨트 대통령이다. 국제장애인의해 선언에 기여한 대통령은 레이건 대통령이다. 그 후로 유엔 총회에서 장애인의 인권을 주장한 정치 지도자들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인권을 주장하는 연설에서 그쳤다. 2001년 멕시코 비센테 폭스(Vicente Fox) 대통령은 권리협약을 제정할 것을 제안하면서 법안 마련을 위한 조직을 구성할 것을 제안하였다. 인권에 대한 연설이 아니라 구체적 법안제정을 제안한 것이다.
만약 폭스 대통령도 다른 대통령들처럼 장애인 인권을 주장하는 연설만 하고 협약을 제안하지 않고 법안 마련을 위한 조직을 제안하지 않았다면 결코 CRPD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폭스 대통령의 제안 채택을 총회에서 결의하면서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법안 마련을 위한 장기간의 법안 마련을 위한 활동이 이루어졌다.
이번에 한국장애인연맹 초청으로 내한한 교수는 바로 CRPD 법안 초안을 만든 인물이다. 한국 방문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CRPD 전문가 포럼에 앞서 18일 오전 11시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사무실에서 간담회가 있었다.
엘른 캔터 교수(Arlene Kanter)는 미국의 대표적 장애인 인권 법학자로 현재 시러큐즈 법학대학(Syracuse University College of Law) 교수로 재직 중이다. 캔터 교수는 가족이 암으로 투병한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누구나 장애인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언제든지 일시적으로라도 장애를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CRPD는 유엔이 제정한 여러 협약들 중에서 이해 당사자가 직접 참여한 최초의 법이라고 의미를 부여하였다. 5년 동안 연간 2회 유엔본부에 각국 정부 인사와 장애인 대표들이 모여 3주에 걸쳐 심의를 하면서 법안을 마련하였고, 캔터 교수는 1993년도의 장애인 기회균등에 관한 규칙이 법안 조문 작업에 큰 참고가 되었다고 하였다.
사실 장애인 당사자들은 민간인으로서 CRPD 제정 과정에 참여하고자 장애인 단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였는데, 비용은 정부의 지원이 아니라 장애인재단에서 마련해 주었다. 장애인재단의 지원이 아니었으면 한국 당사자들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여성과 자립생활 조항이 추가된 현재의 CRPD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캔터 교수는 이제 당사자들의 역량이 충분히 발휘되어 CRPD에 관한 홍보나 교육을 위한 강의는 최근에는 모두 거절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아닌 당사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한국을 방문한 것은 포럼에 참여하여 자신도 연구를 하고 지원할 것이 있을 것이라 여겨 초청에 응했다고 말했다.
캔터 교수는 CRPD의 목적은 장애에 대한 사회의 수용과 장애인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회가 변화해야 장애인 권리가 보장되는데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태도의 변화라고 했다.
CRPD 제정을 위한 작업 과정 중에 회의실을 옮겨야 하는 일이 생겼는데, 수천 명의 세계 장애인들이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는 데 큰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유엔에는 당시 엘리베이터가 한 대뿐이었다. 장애인의 이동에 대한 문제가 유엔에서 바로 현실적 문제로 드러나자 회의를 통해 유엔본부 리모델링을 하게 되었고, 엘리베이터도 추가로 설치했다고 한다. 이것이 CRPD의 가장 먼저 일어난 효과였다고 캔터 교수는 CRPD 인펙트 모델이라고 말했다.
캔터 교수는 한국에서 CRPD 이행을 위한 법제화와 이행계획에 장애인 당사자가 소속감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는지 물었다. 어떤 진전이 있고, 완전한 이행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오창석 국장은 편의시설을 예로 들면서 장애인의 완전한 편의 제공이 아니라 법적 의무 조항만 지키면 된다는 최소 기준에만 충족시키려는 경향이 있고, 입장만 허용하고 화장실 이용 등에는 별로 신경 쓰지 못하고 있다고 하자, 캔터 교수는 접근성과 이용성이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간담회 마친 후 일본에서는 화장실로 가는 통행로의 확보를 식당도 의무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캔터 교수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왔는데, 입구 계단이 높고 경사로는 외극인에게는 찾기 어려운 위치라고 말했다. 당사자 조직이 끊임없이 변화와 권리를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돌봄의 대상에서 권리를 가진 존재로 되기 위해 장벽들을 제거하여야 한다고도 했다.
미국에서 캔터 교수의 주도로 의료인들을 위한 당사자들의 인식개선 교육이 조직적으로 일어났는데, 장애를 가진 엄마가 의사에게 장애에 대해 물으면 의사는 판결을 하듯이 죄송하지만 안 되었다고 말하며, 앞으로 꿈을 이룰 수 없다는 메시지를 날린다. 위로한다는 말이 절망을 갖게 만든다. 장애에 대해 처음 알게 되는 의사가 부정적 이미지를 주지 않도록 교육을 했다고 했다. 도움은 필요하되 낙인이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CRPD의 정신이며, 자기결정권과 접근권이 조약의 목표라고 했다.
CRPD 이행은 의지와 예산이 필요하다. 사회의 변화는 정부의 변화에서 출발해야 한다. 캔터 교수는 민간 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함으로써 장부를 압박할 수 있고, 입법 활동과 사법 소송을 통해 권리를 신장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 편의시설에 관한 표준이 문제가 있다는 당사자들의 요구가 있은 후 접근성 표준이 24페이지에서 30페이지로 늘어났다고 개정 사례를 이야기해 주었다.
유엔에는 CRPD 특별보고관이 있으므로 당사자단체가 이 사람과 연락하면서 질문도 하고 의견도 듣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해 주었다. 세계는 지역별로 장애인인권재판소를 두고 있는데, 중동지역과 한국만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그런 조직을 조속히 만들어 정부가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창피를 주고 압박을 해야 세상이 변한다고도 하였다. 이런 조직의 운영에 대하여는 각국 정부가 직접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캔터 교수에게 물었다. 캔터 교수가 미국에서 오셨는데, 미국은 왜 CRPD를 비준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였다. 캔터 교수는 현재 미국 의회 구성으로 보아 CRPD가 비준될 가능성은 제로라고 하였다. 미국 ADA법이 더 훌륭하므로 굳이 CRPD를 비준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캔터 교수는 부끄럽게 생각하며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셰계 리더 국가로서 꼰대 역할은 하지만 지적받거나 통제를 받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냐가 하자, 정말 부끄럽다고 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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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서인환 iwser@naver.com
CRPD 전문가 초청 포럼을 앞두고 간담회를 하고 있는 모습(우측 끝의 여성이 캔터 교수). ©서인환
【에이블뉴스 서인환 칼럼니스트】한국장애인연맹(한국DPI)이 창립 40주년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 채택 20주년을 기념해 국제 전문가 초청 포럼을 개최했다. 지난 18일 오후 1시 반부터 시작해 19일까지 양일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포럼을 진행하고, 20일은 서울대학교로 이동해 포럼을 진행하는 것으로 준비했다.
한국장애인연맹은 40년 전인 1986년 이익섭 교수를 중심으로 결성되었고, DPI의 국제 활동 참여와 장애 관련 국내 연구모임 운영과 장애인 인권운동을 전개하여 오다가 2002년에 사단법인으로 인가를 받았다. 운동단체로서 법인이 도움이 되는지 구속이 되는지 고민을 해 오다가 장총련과 함께 하기 위해 법인 인가 신청을 결심했다.
CRPD는 2006년(12월 13일)에 유엔에서 법안을 마련하고 세계 각국의 정부가 참여하여 채택을 서명하였다. 그 자리에 장애인 당사자 대표들도 있었는데 한국의 당사자 대표인 이익섭 교수는 복지부장관이 모두 서명을 했다는 말을 듣고 그렇게 알고 있다가 나중에 선택의정서는 서명을 하지 않은 것을 알고 분개하였다.
국내 비준은 2008년에 국회를 통과하였고(12월 2일), 시행은 2009년부터(1월 10일)이다. 그리고 개인 진정과 조사절차를 담고 있는 선택의정서는 2022년(12월 15일)에 와서 이루어졌고, 발효는 2023년 1월 14일이다.
유엔은 1948년 보편적 인권선언을 통하여 모든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선언한 바 있다. 1971년에 정신장애인 권리선언이 있었고, 1975년에 장애인 권리선언을 통하여 장애인의 시민권, 교육, 직업, 사회참여의 권리를 천명한 바 있다. 1981년 국제장애인의 해를 선언하였고, 완전한 참여와 평등을 각국이 실천할 것을 촉구하였다. 장애를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1
982년에 장애인에 관한 세계행동계획을 수립하고, 예방과 재활, 기회균등을 정책에 반영하도록 하였다. 1983년부터 1992년까지 유엔장애인 10년을 선언하여 접근성, 교육, 고용에 대한 논의가 확대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993년 장애인 기회균등에 관한 표준규칙을 제정하였는데, 접근성, 교육, 고용, 자립생활, 사회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규칙들을 마련하였다.
유엔총회에서 장애인 인권을 최초로 주장한 대통령은 루즈벨트 대통령이다. 국제장애인의해 선언에 기여한 대통령은 레이건 대통령이다. 그 후로 유엔 총회에서 장애인의 인권을 주장한 정치 지도자들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인권을 주장하는 연설에서 그쳤다. 2001년 멕시코 비센테 폭스(Vicente Fox) 대통령은 권리협약을 제정할 것을 제안하면서 법안 마련을 위한 조직을 구성할 것을 제안하였다. 인권에 대한 연설이 아니라 구체적 법안제정을 제안한 것이다.
만약 폭스 대통령도 다른 대통령들처럼 장애인 인권을 주장하는 연설만 하고 협약을 제안하지 않고 법안 마련을 위한 조직을 제안하지 않았다면 결코 CRPD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폭스 대통령의 제안 채택을 총회에서 결의하면서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법안 마련을 위한 장기간의 법안 마련을 위한 활동이 이루어졌다.
이번에 한국장애인연맹 초청으로 내한한 교수는 바로 CRPD 법안 초안을 만든 인물이다. 한국 방문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CRPD 전문가 포럼에 앞서 18일 오전 11시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사무실에서 간담회가 있었다.
엘른 캔터 교수(Arlene Kanter)는 미국의 대표적 장애인 인권 법학자로 현재 시러큐즈 법학대학(Syracuse University College of Law) 교수로 재직 중이다. 캔터 교수는 가족이 암으로 투병한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누구나 장애인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언제든지 일시적으로라도 장애를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CRPD는 유엔이 제정한 여러 협약들 중에서 이해 당사자가 직접 참여한 최초의 법이라고 의미를 부여하였다. 5년 동안 연간 2회 유엔본부에 각국 정부 인사와 장애인 대표들이 모여 3주에 걸쳐 심의를 하면서 법안을 마련하였고, 캔터 교수는 1993년도의 장애인 기회균등에 관한 규칙이 법안 조문 작업에 큰 참고가 되었다고 하였다.
사실 장애인 당사자들은 민간인으로서 CRPD 제정 과정에 참여하고자 장애인 단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였는데, 비용은 정부의 지원이 아니라 장애인재단에서 마련해 주었다. 장애인재단의 지원이 아니었으면 한국 당사자들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여성과 자립생활 조항이 추가된 현재의 CRPD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캔터 교수는 이제 당사자들의 역량이 충분히 발휘되어 CRPD에 관한 홍보나 교육을 위한 강의는 최근에는 모두 거절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아닌 당사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한국을 방문한 것은 포럼에 참여하여 자신도 연구를 하고 지원할 것이 있을 것이라 여겨 초청에 응했다고 말했다.
캔터 교수는 CRPD의 목적은 장애에 대한 사회의 수용과 장애인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회가 변화해야 장애인 권리가 보장되는데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태도의 변화라고 했다.
CRPD 제정을 위한 작업 과정 중에 회의실을 옮겨야 하는 일이 생겼는데, 수천 명의 세계 장애인들이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는 데 큰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유엔에는 당시 엘리베이터가 한 대뿐이었다. 장애인의 이동에 대한 문제가 유엔에서 바로 현실적 문제로 드러나자 회의를 통해 유엔본부 리모델링을 하게 되었고, 엘리베이터도 추가로 설치했다고 한다. 이것이 CRPD의 가장 먼저 일어난 효과였다고 캔터 교수는 CRPD 인펙트 모델이라고 말했다.
캔터 교수는 한국에서 CRPD 이행을 위한 법제화와 이행계획에 장애인 당사자가 소속감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는지 물었다. 어떤 진전이 있고, 완전한 이행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오창석 국장은 편의시설을 예로 들면서 장애인의 완전한 편의 제공이 아니라 법적 의무 조항만 지키면 된다는 최소 기준에만 충족시키려는 경향이 있고, 입장만 허용하고 화장실 이용 등에는 별로 신경 쓰지 못하고 있다고 하자, 캔터 교수는 접근성과 이용성이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간담회 마친 후 일본에서는 화장실로 가는 통행로의 확보를 식당도 의무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캔터 교수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왔는데, 입구 계단이 높고 경사로는 외극인에게는 찾기 어려운 위치라고 말했다. 당사자 조직이 끊임없이 변화와 권리를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돌봄의 대상에서 권리를 가진 존재로 되기 위해 장벽들을 제거하여야 한다고도 했다.
미국에서 캔터 교수의 주도로 의료인들을 위한 당사자들의 인식개선 교육이 조직적으로 일어났는데, 장애를 가진 엄마가 의사에게 장애에 대해 물으면 의사는 판결을 하듯이 죄송하지만 안 되었다고 말하며, 앞으로 꿈을 이룰 수 없다는 메시지를 날린다. 위로한다는 말이 절망을 갖게 만든다. 장애에 대해 처음 알게 되는 의사가 부정적 이미지를 주지 않도록 교육을 했다고 했다. 도움은 필요하되 낙인이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CRPD의 정신이며, 자기결정권과 접근권이 조약의 목표라고 했다.
CRPD 이행은 의지와 예산이 필요하다. 사회의 변화는 정부의 변화에서 출발해야 한다. 캔터 교수는 민간 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함으로써 장부를 압박할 수 있고, 입법 활동과 사법 소송을 통해 권리를 신장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 편의시설에 관한 표준이 문제가 있다는 당사자들의 요구가 있은 후 접근성 표준이 24페이지에서 30페이지로 늘어났다고 개정 사례를 이야기해 주었다.
유엔에는 CRPD 특별보고관이 있으므로 당사자단체가 이 사람과 연락하면서 질문도 하고 의견도 듣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해 주었다. 세계는 지역별로 장애인인권재판소를 두고 있는데, 중동지역과 한국만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그런 조직을 조속히 만들어 정부가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창피를 주고 압박을 해야 세상이 변한다고도 하였다. 이런 조직의 운영에 대하여는 각국 정부가 직접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캔터 교수에게 물었다. 캔터 교수가 미국에서 오셨는데, 미국은 왜 CRPD를 비준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였다. 캔터 교수는 현재 미국 의회 구성으로 보아 CRPD가 비준될 가능성은 제로라고 하였다. 미국 ADA법이 더 훌륭하므로 굳이 CRPD를 비준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캔터 교수는 부끄럽게 생각하며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셰계 리더 국가로서 꼰대 역할은 하지만 지적받거나 통제를 받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냐가 하자, 정말 부끄럽다고 답하였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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