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권리보장법, 패러다임 전환의 시작인가 선언의 반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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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햇빛촌 조회 36회 작성일 26-04-27 10:56본문
2026년 4월 23일, 장애인권리보장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제정 요구가 있은지 약 20년 만의 결실이다. 이 법의 통과를 계기로, 필자는 법의 역사적 의의와 구조적 한계를 정책적 관점에서 냉정하게 짚어보고자 한다. 이 글은 환영과 비판, 그 양면을 동시에 담는다.
패러다임 전환의 법적 선언이 갖는 의미
이 법의 핵심 기여는 장애에 관한 국가의 공식 인식론을 전환했다는 데 있다. 기존 장애인복지법 체계는 장애를 개인의 손상(impairment)에서 비롯된 문제로 보고, 국가가 이를 보완·지원한다는 의료적 모델(Medical Model)에 근거했다. 반면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장애를 '환경적 요인과 개인적 요인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사회참여에 제약이 발생하는 상태'로 정의한다. 이는 2006년 채택된 UN 장애인권리협약(CRPD)이 천명한 사회적 모델(Social Model)의 언어를 국내 기본법에 처음으로 명시한 것이다.
권리의 목록 역시 주목할 만하다. 존엄권, 평등권, 자기결정권을 비롯해 교육, 이동, 노동, 정보접근, 문화, 참정권에 이르기까지 삶의 전 영역에 걸친 권리를 법률로 열거했다. 이는 단순한 복지 급여의 확대가 아니라, 장애인을 권리 주체로 규정하는 헌법적 선언에 준하는 의미를 갖는다. 분명히 말한다. 이 법은 대한민국 장애인 정책의 기본 문법을 바꾼 최초의 기본법이다. 그 사실은 어떤 비판도 지울 수 없다.
'탈시설'과 '탈시설화' : 개념의 후퇴가 갖는 정책적 함의
그러나 이 법의 가장 큰 쟁점은 자립생활 조항에서의 개념 후퇴다. 당초 법안은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를 명시하는 방향으로 논의됐다. 그러나 최종 입법된 제19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이를 위해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제한하는 환경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탈시설화 등을 위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탈시설(deinstitutionalization as a right)'과 '탈시설화(deinstitutionalization as a process)'는 법적으로나 정책적으로나 본질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탈시설은 당사자의 자기결정에 기반한 권리 행사이며,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반면 탈시설화는 국가가 주도하는 전환 절차로서, 시기와 방식의 결정 권한이 사실상 행정부에 귀속된다. 이 조항에서 주목해야 할 표현은 '받을 수 있다'다. 이는 권리의 언어가 아니라 급여의 언어이며, 당사자의 청구권을 명확히 설정하지 않는다.
CRPD 제19조는 모든 장애인이 '다른 이들과 동등한 선택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며, UN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일반논평 제5호(2017)는 이를 시설 수용 자체의 폐지 의무로 해석한다. 이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이번 법의 제19조는 협약의 취지를 충분히 반영했다고 보기 어렵다.
이행 체계의 부재: 선언과 실행 사이의 간극
법의 완성도는 권리 선언의 수사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그 권리가 실제로 작동하도록 하는 이행 체계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이 점에서 이 법은 몇 가지 중요한 결함을 안고 있다.
첫째, 재정 근거의 삭제다. 법안 심의 과정에서 장애인권리보장특별기금과 장애인지예산 제도가 삭제됐다. 국제 사례를 보면, 스웨덴의 1993년 「LSS법」과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발달장애인 지원 체계 모두 별도의 재정 기제를 법률로 보장했다. 재정 기반 없는 권리 조항은 집행 가능성이 없다.
둘째, 집행 기구의 격하다. 원안에서 대통령 직속으로 설계됐던 장애인권리보장 컨트롤타워는 국무총리 소속 심의기구로 조정됐다. 이는 부처 간 조정 권한과 정책 우선순위 설정 능력을 실질적으로 약화시킨다.
셋째, 벌칙 조항의 전면 삭제다. 권리 침해에 대한 실효적 구제 수단 없이 권리를 열거하는 것은 법의 강제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미국의 ADA(1990)가 실효성을 가진 배경에는 강력한 집행 기제와 사법 접근성이 있었다.
요컨대, 이 법은 권리를 선언했으나 그 권리를 지킬 이빨을 스스로 뽑아냈다. 이 점은 향후 입법 과정에서 반드시 보완되어야 한다.
국제 기준과의 간극: 우리가 만든 협약, 우리가 따르지 못하는 현실
한 가지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장애인단체들은 CRPD 초안 작성 과정에 직접 참여하여 장애여성(6조), 이동권(20조), 자립생활(19조) 조항을 주도적으로 설계했다. 한국이 국제 기준의 설계자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2014년 UN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최종 권고는 한국의 탈시설화 전략 부재와 시설 거주 장애인의 지속적 증가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2017년을 전후한 통계를 보면, 장애인 거주시설 입소자는 3만 693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이후 서서히 감소했으나 2022년 기준 여전히 2만 7,946명이 시설에 거주하고 있다. 우리가 세계에 제안한 기준을 우리 스스로 이행하지 못한 20여 년의 공백이다.
이번 법은 그 공백을 메우는 첫 시도다. 그러나 CRPD의 요구 수준, 모든 형태의 시설 수용 종식을 목표로 하는 전략적 탈시설화 계획의 수립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한다. 이 간극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데서 다음 단계의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향후 과제: 2년의 유예기간이 이 법의 실질을 결정한다
이 법은 약 2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시행된다. 시행령 제정이 이 법의 실질적 완성도를 결정하는 핵심 과정이 될 것이다. 필자는 다음 사항을 정책적 과제로 제시한다.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장애 당사자의 실질적 참여를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당사자 참여'가 형식적 의견 수렴에 그쳐서는 안 되며, 초안 작성 단계부터 당사자 조직이 주체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삭제된 재정 기반, 특별기금 및 장애인지예산을 후속 입법으로 복원해야 한다. 동시에 장애인복지법 전면 개정을 병행 추진하여 기본법과 개별법 간의 정합성을 확보해야 한다.
벌칙 조항의 재입법을 검토해야 한다. 권리 침해에 대한 구제 수단이 없는 권리법은 집행력 측면에서 근본적 한계를 지닌다. 이 법을 통과시킨 것은 시작이다. 이 법이 실질적 권리 보장의 토대가 되도록 만드는 것은 앞으로의 과제다. 그리고 그 과제는 법이 스스로 수행하지 않는다. 당사자와 현장이 수행한다.
결론적으로, 장애인권리보장법은 대한민국 장애인 정책의 기본 문법을 처음으로 바꾼 역사적 입법이다. 의료적 모델에서 사회적 모델로, 시혜에서 권리로의 전환을 법률 언어로 선언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분명하다.
그러나 탈시설 개념의 후퇴, 재정 기반의 삭제, 이행 체계의 미비는 이 법이 선언에 그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법의 완성은 제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시행령, 후속 입법, 예산 편성, 집행 과정 전반에서 당사자 운동이 지속적으로 개입해야만 이 법은 비로소 살아있는 법이 된다. 선언의 시대는 오래됐다. 이제는 실행의 시대다. 우리는 이 법을 손에 쥐었다. 어떻게 쓰느냐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 이 글은 필자 개인의 견해이며, 소속 단체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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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 전환의 법적 선언이 갖는 의미
이 법의 핵심 기여는 장애에 관한 국가의 공식 인식론을 전환했다는 데 있다. 기존 장애인복지법 체계는 장애를 개인의 손상(impairment)에서 비롯된 문제로 보고, 국가가 이를 보완·지원한다는 의료적 모델(Medical Model)에 근거했다. 반면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장애를 '환경적 요인과 개인적 요인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사회참여에 제약이 발생하는 상태'로 정의한다. 이는 2006년 채택된 UN 장애인권리협약(CRPD)이 천명한 사회적 모델(Social Model)의 언어를 국내 기본법에 처음으로 명시한 것이다.
권리의 목록 역시 주목할 만하다. 존엄권, 평등권, 자기결정권을 비롯해 교육, 이동, 노동, 정보접근, 문화, 참정권에 이르기까지 삶의 전 영역에 걸친 권리를 법률로 열거했다. 이는 단순한 복지 급여의 확대가 아니라, 장애인을 권리 주체로 규정하는 헌법적 선언에 준하는 의미를 갖는다. 분명히 말한다. 이 법은 대한민국 장애인 정책의 기본 문법을 바꾼 최초의 기본법이다. 그 사실은 어떤 비판도 지울 수 없다.
'탈시설'과 '탈시설화' : 개념의 후퇴가 갖는 정책적 함의
그러나 이 법의 가장 큰 쟁점은 자립생활 조항에서의 개념 후퇴다. 당초 법안은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를 명시하는 방향으로 논의됐다. 그러나 최종 입법된 제19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이를 위해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제한하는 환경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탈시설화 등을 위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탈시설(deinstitutionalization as a right)'과 '탈시설화(deinstitutionalization as a process)'는 법적으로나 정책적으로나 본질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탈시설은 당사자의 자기결정에 기반한 권리 행사이며,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반면 탈시설화는 국가가 주도하는 전환 절차로서, 시기와 방식의 결정 권한이 사실상 행정부에 귀속된다. 이 조항에서 주목해야 할 표현은 '받을 수 있다'다. 이는 권리의 언어가 아니라 급여의 언어이며, 당사자의 청구권을 명확히 설정하지 않는다.
CRPD 제19조는 모든 장애인이 '다른 이들과 동등한 선택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며, UN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일반논평 제5호(2017)는 이를 시설 수용 자체의 폐지 의무로 해석한다. 이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이번 법의 제19조는 협약의 취지를 충분히 반영했다고 보기 어렵다.
이행 체계의 부재: 선언과 실행 사이의 간극
법의 완성도는 권리 선언의 수사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그 권리가 실제로 작동하도록 하는 이행 체계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이 점에서 이 법은 몇 가지 중요한 결함을 안고 있다.
첫째, 재정 근거의 삭제다. 법안 심의 과정에서 장애인권리보장특별기금과 장애인지예산 제도가 삭제됐다. 국제 사례를 보면, 스웨덴의 1993년 「LSS법」과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발달장애인 지원 체계 모두 별도의 재정 기제를 법률로 보장했다. 재정 기반 없는 권리 조항은 집행 가능성이 없다.
둘째, 집행 기구의 격하다. 원안에서 대통령 직속으로 설계됐던 장애인권리보장 컨트롤타워는 국무총리 소속 심의기구로 조정됐다. 이는 부처 간 조정 권한과 정책 우선순위 설정 능력을 실질적으로 약화시킨다.
셋째, 벌칙 조항의 전면 삭제다. 권리 침해에 대한 실효적 구제 수단 없이 권리를 열거하는 것은 법의 강제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미국의 ADA(1990)가 실효성을 가진 배경에는 강력한 집행 기제와 사법 접근성이 있었다.
요컨대, 이 법은 권리를 선언했으나 그 권리를 지킬 이빨을 스스로 뽑아냈다. 이 점은 향후 입법 과정에서 반드시 보완되어야 한다.
국제 기준과의 간극: 우리가 만든 협약, 우리가 따르지 못하는 현실
한 가지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장애인단체들은 CRPD 초안 작성 과정에 직접 참여하여 장애여성(6조), 이동권(20조), 자립생활(19조) 조항을 주도적으로 설계했다. 한국이 국제 기준의 설계자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2014년 UN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최종 권고는 한국의 탈시설화 전략 부재와 시설 거주 장애인의 지속적 증가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2017년을 전후한 통계를 보면, 장애인 거주시설 입소자는 3만 693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이후 서서히 감소했으나 2022년 기준 여전히 2만 7,946명이 시설에 거주하고 있다. 우리가 세계에 제안한 기준을 우리 스스로 이행하지 못한 20여 년의 공백이다.
이번 법은 그 공백을 메우는 첫 시도다. 그러나 CRPD의 요구 수준, 모든 형태의 시설 수용 종식을 목표로 하는 전략적 탈시설화 계획의 수립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한다. 이 간극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데서 다음 단계의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향후 과제: 2년의 유예기간이 이 법의 실질을 결정한다
이 법은 약 2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시행된다. 시행령 제정이 이 법의 실질적 완성도를 결정하는 핵심 과정이 될 것이다. 필자는 다음 사항을 정책적 과제로 제시한다.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장애 당사자의 실질적 참여를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당사자 참여'가 형식적 의견 수렴에 그쳐서는 안 되며, 초안 작성 단계부터 당사자 조직이 주체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삭제된 재정 기반, 특별기금 및 장애인지예산을 후속 입법으로 복원해야 한다. 동시에 장애인복지법 전면 개정을 병행 추진하여 기본법과 개별법 간의 정합성을 확보해야 한다.
벌칙 조항의 재입법을 검토해야 한다. 권리 침해에 대한 구제 수단이 없는 권리법은 집행력 측면에서 근본적 한계를 지닌다. 이 법을 통과시킨 것은 시작이다. 이 법이 실질적 권리 보장의 토대가 되도록 만드는 것은 앞으로의 과제다. 그리고 그 과제는 법이 스스로 수행하지 않는다. 당사자와 현장이 수행한다.
결론적으로, 장애인권리보장법은 대한민국 장애인 정책의 기본 문법을 처음으로 바꾼 역사적 입법이다. 의료적 모델에서 사회적 모델로, 시혜에서 권리로의 전환을 법률 언어로 선언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분명하다.
그러나 탈시설 개념의 후퇴, 재정 기반의 삭제, 이행 체계의 미비는 이 법이 선언에 그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법의 완성은 제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시행령, 후속 입법, 예산 편성, 집행 과정 전반에서 당사자 운동이 지속적으로 개입해야만 이 법은 비로소 살아있는 법이 된다. 선언의 시대는 오래됐다. 이제는 실행의 시대다. 우리는 이 법을 손에 쥐었다. 어떻게 쓰느냐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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