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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 당사자로 살며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게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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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햇빛촌 조회 81회 작성일 26-04-27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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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 장애가 있으면 다사다난한 삶들이 당연해야 할 것인가는 숙제
기자명칼럼니스트 김세이 입력 2026.04.27 14:22 수정 2026.04.27 15:27

그것은 단순히 남들과 다르게 장애가 있는 게 왜 나냐면서 서럽다는 건 아니었다. 장애인 등록을 사실상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있어, 경쟁에 그저 불리함만 존재한다는 억울함만도 아니었다.

대인관계와 적응에 늘 어려움을 겪던 어릴 때가 떠올랐다. 그때 정신과에 갈 수 있었다면 삶이 뭔가 다르지 않았을까 같은 해결될 수 없을 질문이 머릿속에 남았다. 내 서툰 사회기술로 인해 더 친해지지 못한 인간관계들도 머릿속을 지나갔다.

내 심정은 이것은 나의 결함이니 내가 정상으로 고쳐져야 나아질 일이라는 첫 과정을 겪었다. 그 다음은 내가 아니라 세상이 잘못된 것이라는 과정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 말이 완전히 틀렸을 건 아니다. 그러나 갈수록 세상과 비장애인을 불의의 온상인 것마냥 보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곧 스스로의 모습이 적잖이 두렵다는 메타 인지가 작동했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빠져나와야 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이들이 있기에

잠시 인권에 대한 이야기로 가 보자. 인권에 대한 정의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라고 적혀 있다. 짧지만 가볍지는 않게 설명되어 있는 셈이다.

즉, 장애인 인권이나 소수민족 인권 같은 '어떤' 인권인가를 따지기 이전에 인권은 그 자체로 사람답게 살 수 있기 위한 보편적인 약속이라고 볼 수 있게 된다.

글을 쓰는 시점인 2026년 봄, 인권의 가치와 미래는 안타깝게도 위기의 시대로써 많이 이야기되고 있다. 인간의 가치에 대한 위협을 여러 측면에서 맞이하고 있는 시대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이 온 지구의 이슈가 되었다. 이런 시대에 사람다운 삶을 신경쓰자며 만들어오던 가치는 마치 꿈처럼, 추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세상에 대한 환멸과 절망에 차 있을 수는 없다. 사람과 세상 걱정에 뜻을 함께하는 수많은 이들이 모여 가시밭길이라도 한 걸음 조금씩 포기하지 않음을 알면 이럴 때 인류애가 무거운 거룩함만이 아닌, 내 곁에 함께하는 온기가 되곤 한다.

내게 주어진 것을 사랑하며, 내 사람을, 친구를 사랑한다

세상에 대한 체념을 하지 않는 마음가짐은 분명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인류의 불의에 불편감을 느끼는 것만으로 삶의 동력이 유지될 수는 없었다. 세상을 보는 청년의 '뜨거운 가슴'은 간직하되, 이 온기로 내 곁의 사람을 돌아보았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여느 사람들이 그렇듯이 다양하다. 혈연가족들이 있고, 소년 소녀 시절부터 함께 나이 먹으며 성장해왔을 오랜 친구들이 있다. 일터에서 만나는 분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 애쓴다.

그 외에는 게임 같은 취미 활동을 공통분모로 친해진 사람들이 있고, 정신적 장애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친해진 단체 및 자조모임 지인들이 있다. 또한 3년 넘게 여자친구와 연애 중이기도 하다. (연애에 대한 자세한 글은 추후에 각 잡고 써볼까 한다.)

인간관계는 내게 소중한 자산이고 보물과도 같으나 그와 동시에 가만히 있는다고 되는 건 아니기 마련이다. 적당할 때 나도 먼저 나설 줄 알고, 계속 더욱 끈끈하게 유지시킬 필요가 있다.

이는 스스로에게 다짐과도 같다. 아직도 적절할 때 먼저 연락하기,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뜻을 전달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래서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다가, 남에게 무심하다는 오해를 아직도 좀 받는 모양이다.

사람들을 만날 때, 자폐 특성적인 행동이 드러나는 걸 의도적으로 줄이는 시도인 마스킹(masking)류의 자기 단속 등으로 기력이 잘 소진되는 편이다. 그래서 내향적인 건지 자극 적은 혼자가 편할 때가 너무나 많게 되었다.

그렇지만 스스로도 무인도에 살듯 살고 싶진 않으니, 이 충돌을 원만한 방향으로 정리해서 이끌어 놓는 것이 내 대인관계 실력 성장에서 현재 단계일 것이다. 내가 내 곁 사람들을 정말로 좋아하는 대로 이끌어갈 일이 되었다.

이것은 '배부른 소리'인가? 자폐면 응당 그리 됨을 돌아보다

내가 자폐 당사자로서 스스로의 인간관계를 저렇게 표현한 것을 두고 누군가는 공감하겠지만, 누군가는 어색함을 느낄 것이다. 아직 이 글에서 듣지도 않은 반응에 지레 제 발 저리는 것만은 아니다. 친구 한 명 사귈 수 없던 시절의 나 자신을 잊었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자폐 당사자면 고립과 부적응 경험 및 그로 인한 진한 고생은 당연한 일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그 시절은 물론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생각이다. 물론 단순히 복지 사각지대를 벗어난다고 해서, 국가 복지 시스템이 우정을 만들어 주고 없는 적응력을 만들어 주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게 맞다.

그렇지만 사람답게 사는 것을 최대한 지켜주는 범위에서 그 고생 조금은 덜게 해 볼 만한 생각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다사다난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개인의 못남으로만 보는 건 또다른 가해가 아닐까? 왜 자폐인의 경험담은 너무 아프고 처절한 고생 경험담이 곧 진정성이 될까?

이 글에서 전부 답을 하는 건 당연히 분량으로나 뭘로나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볼 거리임은 분명하다. 도발적인 말이겠지만, '못남'과 '장애'를 너무 먼 차이로 보는 건 선긋기, 능력주의적 우월의식 등의 문제를 안게 된다.

물론 장애는 못남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못났으면 '못났으니까' 그만큼 인간됨에 손해를 보는 게 마땅하다는 사고의 근본적인 타파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라도 자폐 당사자들이 덜 아프고 존엄을 덜 짓밟히고, 눈물이 멈추고 정당한 편의가 햇살처럼 비춰주기를 바란다. 나 힘들었다고 다들 힘들어 보라고 하지는 않을 수 있는 계기는, 이제 내가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인가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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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니스트 김세이 ez2a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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