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가 다른, 자폐인과 지적장애인의 노후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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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햇빛촌 조회 59회 작성일 26-05-27 15:16본문
'좋아하는 것을 찾아주는' 지적장애인 VS
'불편한 것을 없애주는' 자폐인의 노후준비
기자명칼럼니스트 김영아 입력 2026.05.27 11:43 수정 2026.05.27 11:44
발달장애인 노후준비의 필요성을 체감한 지는 오래 되었지만, 실제 실행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기에 아직 배울 것도, 경험할 일도 많은 초보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내게 가장 어려운 과제가 있으니 ‘자폐인의 노후준비’ 이다.
부모교육을 할 때 마다 나는 자폐인 자녀를 둔 부모님들 앞에 위축되곤 한다. 노후준비에 대한 명확한 대안도 방법도 제시해드리지 못하기에 20년 넘는 나의 현장경력도 이분들 앞에서는 무용해지곤 한다. 이렇게 공개적인 곳에 자기고백하듯 말하면 누군가 조금은 길을 알려주실까?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사례나 경험을 공유해주지 않으실까? 하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부끄러운 나의 마음을 이곳에 꺼내어 본다.
지적장애인과 자폐인은 삶의 모양도, 선호도, 관계망도 매우 다르다. 실제 많은 나라에서 지적장애과 자폐인은 아예 다른 장애로 구분이 되는데, 우리나라는 이 둘을 합쳐 ‘발달장애’ 라 말하니 비중이 훨씬 높은 지적장애인 중심으로 교육, 지원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자폐인의 노후준비 교육 현장
자폐인의 노후준비 교육 현장. ©김영아
지적장애인의 노후준비는 ‘관계망’과 ‘강점과 선호 중심의 삶 설계’가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지역사회 안에서 사람들과 연결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만들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관계를 넓혀가는 것이 핵심이다. 반면 자폐인의 노후준비는 조금 다른 방향의 접근이 필요하다.
많은 자폐인은 변화에 대한 스트레스, 감각 민감성,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불안, 사회적 관계의 피로를 크게 경험한다. 그래서 자폐인의 노후준비는 '관계망을 많이 만드는 것'보다, 중단없는 행동중재지원과 불편함이 최소화된 환경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가 핵심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경험이 좋은 자극이 될 수 있지만, 어떤 자폐인에게는 반복적으로 바뀌는 지원인과 시끄러운 환경이 삶의 안정감을 무너뜨리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자폐인의 노후설계는 '사회성을 얼마나 키울 것인가, 관계망을 어떻게 늘릴 것인가'보다 '불편하고 불안하지 않은 하루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어떻게하면 이 루틴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가 더 중요할 수 있다.
40대 자폐성장애인 은수 씨(가명)는 매일매일 같은 하루를 살아간다. 오전 8시에 일어나 좋아하는 머그컵에 믹스커피를 마시고, 같은 음악을 들으며 옷을 입는다. 점심 이후에는 집 앞 공원과 산책로에서 1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귀가 후에는 좋아하는 지하철 유튜브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겉으로 보기엔 단조로운 일상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은수 씨에게 이 루틴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삶을 유지하게 만드는 중요한 구조다. 몇 해 전, 은수 씨의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입원하신 적이 있었다. 당시 이모가 잠시 엄마의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생활패턴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식사시간이 달라졌고, 갑작스러운 외출이 생겼으며, 평소 먹지 않던 반찬도 자주 올라왔다. 주변 사람들은 “융통성을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은수 씨는 점점 잠을 자지 못했고 불안과 짜증이 심해졌다. 결국 주변에서는 “도전적 행동이 심해졌다”고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제 문제는 은수 씨가 아니라, 은수 씨의 일상패턴이 무너진 데 있었다. 이후 활동지원사와 지원기관 실무자들은 은수 씨의 생활패턴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몇 시에 일어나는지, 어떤 말투를 편안해하는지, 어떤 냄새를 힘들어하는지, 갑작스러운 접촉을 싫어하는지, 불안할 때 어떤 행동이 나타나는지를 기록했다. 그리고 가능한 한 기존 루틴을 다시 회복하도록 도왔다. 놀랍게도 몇 주 후, 은수 씨의 불안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다시 오후운동을 나가기 시작했고, 밤에도 안정적으로 잠을 자기 시작했다.
이 사례는 자폐인의 노후준비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자폐인의 노후는 단순히 '누가 돌볼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 사람의 삶의 리듬을 누가 이해하고 유지할 수 있는가'에 더 가까운 문제다. 그래서 자폐인의 노후준비에서는 주변지원인이 역할을 명확히 알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닌 '그들의 일상, 행동을 존중해주는 것' 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자폐인의 삶을 함께 이해하는 작은 관계망을 ‘써클 오브 서포트(Circle of Support)’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족, 활동지원사, 사회복지사, 이웃, 지역 활동가 등이 작은 원처럼 연결되어 당사자의 삶을 함께 지지하는 구조다. 중요한 것은 한 명이 모든 책임을 떠안지 않는다는 점과 아주 천천히 관계의 밀도를 채워간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병원 동행을 돕고, 어떤 사람은 정기적으로 안부를 확인하며, 또 어떤 사람은 위기 상황에서 연락을 받는 역할을 한다. 아주 작은 역할이라도 여러 사람이 연결될 때 부모 사후에도 삶의 연속성이 유지될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해외의 자폐인 지원에서는 ‘행동중재지원’을 아동기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행동중재를 조기개입이나 아동기 치료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성인기와 노년기에도 행동중재와 환경조정 지원을 계속 이어가는 사례가 많다. 자폐인의 어려움은 나이가 들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화와 함께 더 복합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환경변화에 대한 스트레스, 감각 피로, 사회적 고립, 부모 사별 이후의 불안은 중·노년기 자폐인에게 매우 큰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성인기 이후에도 루틴 유지, 감각조절, 의사소통 지원, 위기 행동 예방 같은 지원체계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아직 자폐인의 노후를 거의 상상해보지 못했다.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이나 직업지원은 조금씩 확대되고 있지만, '자폐인이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전무한 수준이다.
이제는 우리의 질문이 조금 달라져야 한다. “이들을 누가 돌봐줄 것인가”가 아니라, “이 사람이 편안해하는 일상을 어떻게하면 오래 유지할 수 있을까”가 되어야 한다. 자폐인의 노후준비는 거창한 계획에 있지 않다. 불안하지 않은 하루, 익숙한 루틴, 자신을 이해하는 몇 사람, 일상루틴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그 준비는 가족의 숙제가 아니라, 앞으로 지역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우리 모두의, 국가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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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영아 rehabgirl@naver.com
'불편한 것을 없애주는' 자폐인의 노후준비
기자명칼럼니스트 김영아 입력 2026.05.27 11:43 수정 2026.05.27 11:44
발달장애인 노후준비의 필요성을 체감한 지는 오래 되었지만, 실제 실행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기에 아직 배울 것도, 경험할 일도 많은 초보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내게 가장 어려운 과제가 있으니 ‘자폐인의 노후준비’ 이다.
부모교육을 할 때 마다 나는 자폐인 자녀를 둔 부모님들 앞에 위축되곤 한다. 노후준비에 대한 명확한 대안도 방법도 제시해드리지 못하기에 20년 넘는 나의 현장경력도 이분들 앞에서는 무용해지곤 한다. 이렇게 공개적인 곳에 자기고백하듯 말하면 누군가 조금은 길을 알려주실까?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사례나 경험을 공유해주지 않으실까? 하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부끄러운 나의 마음을 이곳에 꺼내어 본다.
지적장애인과 자폐인은 삶의 모양도, 선호도, 관계망도 매우 다르다. 실제 많은 나라에서 지적장애과 자폐인은 아예 다른 장애로 구분이 되는데, 우리나라는 이 둘을 합쳐 ‘발달장애’ 라 말하니 비중이 훨씬 높은 지적장애인 중심으로 교육, 지원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자폐인의 노후준비 교육 현장
자폐인의 노후준비 교육 현장. ©김영아
지적장애인의 노후준비는 ‘관계망’과 ‘강점과 선호 중심의 삶 설계’가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지역사회 안에서 사람들과 연결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만들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관계를 넓혀가는 것이 핵심이다. 반면 자폐인의 노후준비는 조금 다른 방향의 접근이 필요하다.
많은 자폐인은 변화에 대한 스트레스, 감각 민감성,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불안, 사회적 관계의 피로를 크게 경험한다. 그래서 자폐인의 노후준비는 '관계망을 많이 만드는 것'보다, 중단없는 행동중재지원과 불편함이 최소화된 환경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가 핵심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경험이 좋은 자극이 될 수 있지만, 어떤 자폐인에게는 반복적으로 바뀌는 지원인과 시끄러운 환경이 삶의 안정감을 무너뜨리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자폐인의 노후설계는 '사회성을 얼마나 키울 것인가, 관계망을 어떻게 늘릴 것인가'보다 '불편하고 불안하지 않은 하루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어떻게하면 이 루틴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가 더 중요할 수 있다.
40대 자폐성장애인 은수 씨(가명)는 매일매일 같은 하루를 살아간다. 오전 8시에 일어나 좋아하는 머그컵에 믹스커피를 마시고, 같은 음악을 들으며 옷을 입는다. 점심 이후에는 집 앞 공원과 산책로에서 1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귀가 후에는 좋아하는 지하철 유튜브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겉으로 보기엔 단조로운 일상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은수 씨에게 이 루틴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삶을 유지하게 만드는 중요한 구조다. 몇 해 전, 은수 씨의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입원하신 적이 있었다. 당시 이모가 잠시 엄마의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생활패턴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식사시간이 달라졌고, 갑작스러운 외출이 생겼으며, 평소 먹지 않던 반찬도 자주 올라왔다. 주변 사람들은 “융통성을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은수 씨는 점점 잠을 자지 못했고 불안과 짜증이 심해졌다. 결국 주변에서는 “도전적 행동이 심해졌다”고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제 문제는 은수 씨가 아니라, 은수 씨의 일상패턴이 무너진 데 있었다. 이후 활동지원사와 지원기관 실무자들은 은수 씨의 생활패턴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몇 시에 일어나는지, 어떤 말투를 편안해하는지, 어떤 냄새를 힘들어하는지, 갑작스러운 접촉을 싫어하는지, 불안할 때 어떤 행동이 나타나는지를 기록했다. 그리고 가능한 한 기존 루틴을 다시 회복하도록 도왔다. 놀랍게도 몇 주 후, 은수 씨의 불안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다시 오후운동을 나가기 시작했고, 밤에도 안정적으로 잠을 자기 시작했다.
이 사례는 자폐인의 노후준비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자폐인의 노후는 단순히 '누가 돌볼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 사람의 삶의 리듬을 누가 이해하고 유지할 수 있는가'에 더 가까운 문제다. 그래서 자폐인의 노후준비에서는 주변지원인이 역할을 명확히 알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닌 '그들의 일상, 행동을 존중해주는 것' 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자폐인의 삶을 함께 이해하는 작은 관계망을 ‘써클 오브 서포트(Circle of Support)’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족, 활동지원사, 사회복지사, 이웃, 지역 활동가 등이 작은 원처럼 연결되어 당사자의 삶을 함께 지지하는 구조다. 중요한 것은 한 명이 모든 책임을 떠안지 않는다는 점과 아주 천천히 관계의 밀도를 채워간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병원 동행을 돕고, 어떤 사람은 정기적으로 안부를 확인하며, 또 어떤 사람은 위기 상황에서 연락을 받는 역할을 한다. 아주 작은 역할이라도 여러 사람이 연결될 때 부모 사후에도 삶의 연속성이 유지될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해외의 자폐인 지원에서는 ‘행동중재지원’을 아동기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행동중재를 조기개입이나 아동기 치료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성인기와 노년기에도 행동중재와 환경조정 지원을 계속 이어가는 사례가 많다. 자폐인의 어려움은 나이가 들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화와 함께 더 복합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환경변화에 대한 스트레스, 감각 피로, 사회적 고립, 부모 사별 이후의 불안은 중·노년기 자폐인에게 매우 큰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성인기 이후에도 루틴 유지, 감각조절, 의사소통 지원, 위기 행동 예방 같은 지원체계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아직 자폐인의 노후를 거의 상상해보지 못했다.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이나 직업지원은 조금씩 확대되고 있지만, '자폐인이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전무한 수준이다.
이제는 우리의 질문이 조금 달라져야 한다. “이들을 누가 돌봐줄 것인가”가 아니라, “이 사람이 편안해하는 일상을 어떻게하면 오래 유지할 수 있을까”가 되어야 한다. 자폐인의 노후준비는 거창한 계획에 있지 않다. 불안하지 않은 하루, 익숙한 루틴, 자신을 이해하는 몇 사람, 일상루틴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그 준비는 가족의 숙제가 아니라, 앞으로 지역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우리 모두의, 국가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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